정당화된 참인 믿음은 지식인가? (Gettier 1963)

Edmund Gettier, "Is Justified True Belief Knowledge?," Analysis 23.6: pp. 121-123.

소개

지식 개념 분석을 인식론의 중심 문제로 띄운 전설적인 논문. 저자인 에드먼드 게티어Edmund Gettier[Wikipedia|Daily Nous(부고)]는 이 논문 외에는 저명한 저술은 커녕 알려진 논문조차도 거의 없지만, 이 논문 한 편으로 모든 철학도들에게 적어도 한 번은 언급되는 전설적인 철학자로 부상했다. 위키피디아 문서에서도 소개하듯, 이 논문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저술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게티어를 보며 동료들은 그의 정년 심사를 위해 뭔가 저널에 써서 낼 것을 종용했다. 그러자 게티어는 세 쪽 짜리 논문 하나를저명한 저널인 《분석Analysis》지에 투고했고, 이 논문 하나로 철학계를 뒤집어버렸다는 것. 그 외의 게티어의 생애나 철학적 관점에 대해 많이 알려져 있는 것은 없다. 다만 훌륭한 교육자였으리라고 추측은 해보게 되는데, 여러 동료들이 게티어를 훌륭한 철학자로 생각했으니 이런 일화도 있었으리라는 점을 생각하자면 그렇다.  오늘날 큰 영향력을 갖는 철학자인 테드 사이더Ted Sider 또한 그의 논리학 교재 Logic for Philosophy를 게티어에게 헌정하고 있기도 하다.

요약

지식에 대한 JTB 분석

플라톤, 치좀Roderick Chisholm, 에이어A. J. Ayer를 비롯해 전통적으로 간주되던 지식 정의는 다음과 같은 형태를 갖는다:\[\eqalign{\text{$S$는 $P$임을 안다}~\it{iff}~& \text{(i) $P$가 참이다}\\&\text{(ii) $S$가 $P$임을 믿는다}\\&\text{(iii) $S$는 $P$임을 믿음에 있어 정당화되어있다.}}\tag{JTB}\]

논증에 앞서 두 사항을 염두에 두자. 첫째로, 어떤 명제를 믿음이 정당화되면서도 그 명제가 거짓인 경우가 가능하다. 둘째로, 인식 주체 \(S\)에게 어떤 명제 \(P\)를 믿음이 정당화되어 있고, \(P\)가 \(Q\)를 함축하며, \(S\)가 \(P\)로부터 \(Q\)를 연역해낼 수 있다면, \(S\)는 \(Q\)를 믿음이 또한 정당화되어 있다.

사례 1. 구직 면접

상훈은 지훈과 같은 면접을 보았다. 그런데 상훈은, 지훈이 면접에 합격할 것이라고 사장이 말하는 것을 보았다. 또한 상훈은 지훈의 주머니에 동전 열 개가 들어있는 것을 보았다. 이를 통해 상훈은 정당화된 두 믿음, (1), (2)으로부터 추론된, 따라서 정당화된 믿음 (3)을 갖는다.

(1) 지훈이 면접에 합격할 것이다.
(2) 지훈의 주머니에는 동전 열 개가 들어있다.
(3) 면접에 합격할 사람의 주머니에는 동전 열 개가 들어있다.

그런데 사실 합격자는 상훈이었다. 또한, 상훈이 위의 생각을 하는 동안 상훈도 모르게 상훈의 주머니에는 동전이 열 개 들어 있었다. 그렇다면 (3)은 참이었을 것이다. 아울러 상훈은 (3)을 믿고 있고, 이 믿음은 정당화되어 있다. 그러나 상훈은 (3)을 알고 있는가?

사례 2. 친구의 차

상훈은 자기 친구, 지훈이 예전에 제네시스를 늘상 갖고 있었다는 기억, 그리고 방금 지훈과 함께 제네시스로 드라이브를 했다는 점으로부터 지훈이 제네시스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는 지금은 어디 있는지 모르겠는 친구, 보현을 생각하며 무작위의 지역들을 대입해서 "지훈이 제네시스를 갖고 있거나, 보현이 ...에 있다"와 같은 명제들을 만들어 본다. 즉, 상훈은 믿는 것이 정당화된 (4)로부터 연역적으로 함축되는, 따라서 믿는 것이 정당화된 (5), (6), (7)을 추론한다.

(4) 지훈은 제네시스를 갖고 있다.
(5) 지훈이 제네시스를 갖고 있거나, 보현이 부산에 있다.
(6) 지훈이 제네시스를 갖고 있거나, 보현이 상하이에 있다.
(7) 지훈이 제네시스를 갖고 있거나, 보현이 홋카이도에 있다.

그런데 사실 지훈은 이제 제네시스를 갖고 있지 않고, 방금 몰았던 제네시스는 렌트카였다. 또한, 우연히도 보현은 상훈이 위의 추론을 하는 동안 상하이에 있었다. 그렇다면 (6)은 참이었을 것이다. 아울러 상훈은 (6)을 믿고 있고, 이 믿음은 정당화되어 있다. 그러나 상훈은 (6)을 알고 있는가?

결론

위의 두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JTB)가 지식에 대한 충분조건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통적으로 간주되던 지식 정의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시사점

  • 말할 것도 없이, 이 논문은 암묵적으로 간주되던 지식 개념의 치명적인 문제를 발굴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
  • 이에 대한 반응으로 많은 철학자들은 대안적인 지식 정의, 가령 JTB+X의 꼴을 갖는 정의들을 시도했으나, 그 이후 다시 발견된 변형된 게티어 사례들은 이 꼴의 지식 정의가 결국 반례를 갖게 된다는 점을 밝혔다.
  • 오늘날 지식 이론에서 큰 세력을 갖고 있는 지식에 대한 외재주의 이론, 가령 덕 이론이나 신빙성 이론 등은 게티어 반례에 관한 해결 시도들과 함께 발전되었다는 점에서, 이 논문은 현대 인식론의 발전 자체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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