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에 의한 진리 - 1부 (2) (Russell 2008)

최근 어떤 사이트이던 html 헤더에 스크립트를 써 두면 LaTex 문법을 사용할 수 있게 해 준다는, MathJax에 대해 듣고 이를 사이트에 설치해 두었다. 덕분에 일일이 특수문자와 자체 마크업 문법을 통해 논리식을 쓰던 수고를 다분히 덜 수 있게 되었다. 나처럼 Ghost 기반의 블로그를 쓰고 있는 경우, 이 링크를 통해 MathJax를 간단히 활성화시킬 수 있다.


Russell, Gillian. 2008. "Part 1. The Positive View" in Truth in virtue of Meaning(pp. 29-128).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글타래: 1부 (1) | 1부 (2) | 2부 | 3부

요약

3. 양상성을 넘어

문제 제기[3.1]. 2장 말미에서 제안한, 의미에 의한 진리에 대한 양상적 정의는 다음과 같이 주어졌다:

(정의 7) 의미에 의한 진리 (양상적 정의)
문장 S가 참인 것은 도입 맥락과 발화 맥락의 모든 순서쌍에 대해, S에 의해 표현된 명제가 그 맥락에 비추어, 모든 평가 맥락에서 참인 바로 그 때이다.

이 정의는 직관적으로 종합 문장을 의미에 의해 참인, 따라서 분석적인 문장으로 분류한다는 문제를 갖는다. 표 3.1의 우측 열에 있는 문장들은 필연적으로 참이지만 종합적인 문장의 사례이다. 따라서 이 정의는 틀렸다.

표 3.1. 두 종류의 항상적 문장

분석적 필연 종합적 필연
모든 총각은 미혼이다 저녁별은 새벽별이다
내가 여기 지금 있다 신은 있다
캐시어스 클레이는 무하마드 알리이다

이는 의미에 의한 진리에 대한 정의가 양상 어구로 주어졌음에 대한 자연스런 귀결이다. 이 장에서는 단지 분석성에 관한 여기에서의 해명뿐 아니라 최근의 의미 이론을 몰아세우는 문제에로 우리가 나아가고 있음이 논증된다: 의미 분석을 위해 쓰이는 친숙한 양상적 도구들은, 비록 강력하지만, 너무나 성기다. 이어 지금까지 전개된 해명에 대한 정교화를 제안함을 통해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이 제안된다.

의미론과 양상성[3.2]. 직접 지시어. Demonstratives에서의 카플란의 견해에 있어, 이름과 지표어는 직접 지시적이며, 그 귀결로서, 이름이나 지표어의 지시체는 평가 맥락에 무관하게 주어진다. 크립키를 따라, 이러한 속성을 고정성이라고, 또 이러한 속성을 갖는 단어를 고정 지시어라고 부르자. 고정성은 직접 지시어에 대한 대략적이면서도 항시 준비된ready 검사로 역할할 수 있다. 그러나 고정성 검사는 적어도 두 종류의 표현에 대해 위양성을 반환하기 때문에 완벽하지는 못한다.

먼저는 실체적인(substantial) 양상적 사실로서 모든 가능세계에서 같은 대상을 집어내는 기술구들이 있다. 이들을 실체적인 고정 지시어라고 부르자. 다음으로는 고정화된rigidified 기술구들이 있다. 이들을 만드는 일반적인 방법은 카플란의 dthat 연산자를 사용하는 것이다. 기술구 \(\alpha\)와 결합하여, \(\ulcorner dthat[\alpha]\urcorner\)는 현실 세계에서 \(\alpha\)에 들어맞는fit 대상을 고정적으로 지시하는 표현이 된다. 이들은 고정 지시어이지만, 직접 지시적이지는 않으며, 실체적인 양상적 사실의 귀결로서 고정적일 필요도 없다.

표 3.2. 세 종류의 고정 지시어

직접 지시적 실체적으로 고정적 고정화되어 있음
Hesperus 저녁별 dthat[저녁별]
\(\pi\) 2와 2의 합 삼각형의 각들의 현실적 합
하느님 우주의 창조자 우주의 현실적 창조자
이 맥락의 행위자 dthat[이 맥락의 행위자]

내용. 내용에 대한 표준적인 가능세계 해명은 표현의 내용을 그 내포(평가 상황으로부터 그 세계에서 그 표현의 외연에로의 함수)와 동일시한다. 문장의 내포란 그 문장이 참인 가능세계들의 집합과 동일시된다. 제프 킹Jeff King은 이러한 견해가 만족스럽지 못한 두 서로 다른 전거sources를 명시한다identifies. 먼저, 필연적 진리를 표현하는 모든 문장들은 같은 내포를 갖는다. 예컨대, (3.1)-(3.4)는 모두 같은 명제를 표현한다고 여겨진다. 이는 틀린 결과로, 이 경우 믿음을 인식 주체epistemic agent와 명제 사이의 관계로 간주할 때, 만약 (3.5)가 참이라면 (3.6)도 그렇다는 것이 된다.

예문
(3.1) 개밥바라기는 개밥바라기이다.
(3.2) 2 + 2 = 4
(3.3) 삼각형은 세 변을 갖는다.
(3.4) 모든 총각은 미혼이다.
(3.5) 철수는 2 + 2 = 4라고 믿는다.
(3.6) 철수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참이라고 믿는다.

나아가, (3.7)에서와 같이, 누구든 어떠한 명제를 믿는다면 (3.8)에서처럼 그것이 필연적으로 귀결짓는 어떠한 명제와의 연언이라도 이를 또한 믿어야 한다. 나아가, (3.9)와 같은 불가능 명제는 모든 명제들을 그 필연적 귀결로 가지므로, 이를 믿는 이라면 누구든 모든 명제를 믿어야 한다. 이는 명제를 가능세계들의 집합과 동일시하는 것에 대한 또다른 거짓된 귀결이다.

예문
(3.7) 영희는 눈이 희다고 믿는다.
(3.8) 영화는 눈이 희고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참이라고 믿는다.
(3.9) 7 \(\times\) 8 = 62

킹이 명시한 다른 이유는 직접 지시에 관한 것이다. 이름과 지표어가 직접 지시적이라는 견해는 그 내용에 관한 견해를 함축하며, 이는 또한 이름과 지표어를 포함한 문장의 내용에 관한 귀결[구조화된 명제 해명]을 갖는다.

카플란적 특성(K-특성). 카플란적 의미에서, 표현의 특성이란 숙련된 화자에게 알려진 규칙으로, 어떠한 표현이 발화된 맥락이 주어졌을 때, 그 내용이 무엇인지 식별할 수 있는 그러한 규칙이다. 그런데 \(dthat\)[2와 4의 합]의 특성과 \(dthat\)[바로 그 \(x: x =\) 6]의 특성을 생각해 보자. 두 기술구 모두 모든 발화 맥락에서 6을 집어 낸다. 그러니 \(dthat\)[2와 4의 합]의 특성과 \(dthat\)[바로 그 \(x: x =\) 6] 특성은 둘 다 모든 발화 맥락을 가능 세계에로부터 숫자 6에로의 항상적 함수constant function에로 사상한다. 양상적 해명은 이 예시들과, 진정한 K-특성의 동의성을 구분해 내지 못한다(표 3.3 참조).

표 3.3. 두 종류의 K-특성 동의성

K-특성 동의성 양상적 K-특성 등가

\(dthat\)[2와 4의 합]
\(dthat\)[바로 그 \(x: x =\) 6]
우리
저희
2와 4의 합
바로 그 \(x: x =\) 6

지시 결정자 동의성. 동의성이란 의미의 같음이지만, "의미"의 서로 다른 네 뜻을 구별한다면 네 가지 서로 다른 동의성이 있게 된다: 지시체의 같음, 내용의 같음, 특성의 같음, 지시 결정자의 같음. 콰인은 일군의 의미론적 개념들(의미, 동의성, 필연성, 자기모순성, 의미론적 규칙, 정의, 분석성)이 순환적으로 서로를 정의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2장에서 논변되었기로, 분석성을 정의할 수 있는 의미란 지시 결정자로서의 의미인데, 혹자는 이를 통해 콰인의 순환원에 등장하는 다른 개념들이 정의될 수 있을지 궁금해할런지도 모른다. 여기에 이용 가능한 두 명백한 동의성 개념이 있음이 드러날 것인데, 하나는 엄밀한 개념이며, 다른 하나는, 콰인이 시사했듯, 양상 어구로 정의될 수 있는 보다 느슨한 개념이다.

(정의 8) 엄밀한 동의성
두 단어가 동의적인 것은, 그들이 같은 지시 결정자를 갖는 바로 그 때이다.

그런데 콰인은 "필연성"이 또한 동의성을 정의함에 있어 사용될 수 있어야 함을 시사했다. 그의 정의에서 두 표현이 동의적인 것은 필연성 맥락에서 진리치의 변경 없이 언제나 상호 교체 가능한 바로 그 때이다. 그러나 이는 참이 아니다. 필연성 맥락에서 "4 + 4의 절반"과 "4"는 대치될 수 있겠지만 이들이 같은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문제를 제쳐두고서라도 콰인의 정의는 엄밀한 동의성과 동연적이지는 않은데, "개밥바라기"와 "샛별"은 필연성 문맥에서 상호 교체 가능하지만 같은 지시 결정자를 갖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콰인의 정의는 '같은 의미의 낱말은 같은 양상적 일람profile을 갖는다'라는 생각을 포착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정의 9) 참조], 이는 동의성에 대한 새로운, 또한 콰인적인 것으로 이해될 법한 정의[정의 10]를 시사한다.

(정의 9) 양상적 일람의 같음
두 표현이 같은 양상적 일람을 갖는 것은, 도입 및 발화에 대한 같은 맥락에 비추어, 이들이 항상 같은 외연을 갖는 바로 그 때이다.
(정의 10) 느슨한 동의성
표현 E1이 표현 E2와 동의적인 것은, 임의의 문장 S1에 등장하는 E1을 대치함을 통해 형성된 문장 S2가, 원래 문장인 S1과 같은 양상적 일람을 갖는 바로 그 때이다.

엄밀한 동의성 개념과 느슨한 개념은 동연적이지 않다. 엄밀하게 동연적인 모든 표현쌍은 또한 느슨하게 동연적이지만,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느슨한 동의성은 콰인의 시도에 대해 위에서 제기한 문제를 마찬가지로 갖는다.

분석성과 양상성. [상기한 고찰에서 시사되듯] 양상적으로 이해된 내용 개념은 보다 엄밀하고, 보다 형이상학적인 내용 개념의 이해로부터 구별되어야 하며, 따라서 지금부터는 양상적으로 이해된 의미에 의한 참 개념을 보다 엄밀하고, 보다 형이상학적인 의미에 의한 참 개념의 이해로부터 구별하고자 할 것이다.

먼저 고정성에 대응되는 문장의 특성으로 다음을 정의하자:

(정의 11) 항상성 (문장)
어떠한 문장이 항상적인 것은, 그것이 모든 발화 및 도입 맥락에서 참인 바로 그 때이다.

모든 분석 문장은 항상적이며, 그러나 몇몇 종합적 문장 또한 항상적이고, 따라서 항상성이란 분석성에 대한 대략적 검사로만 역할한다. 항상성은 고정성과는 몇몇 중요한 측면에서 구분된다. 이는 단어가 아닌 문장의 속성이며, 이는 평가 맥락과 무관한 외연 결정의 문제가 아닌, 발화 및 도입 맥락에 무관한 진리치 소유의 문제이다.

이제 하나의 질문에 당면한다: 직접 지시에 고정성에 대해 놓인 양 의미에 의한 진리에 대한 양상적 이해에 놓인 속성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그 기저의 형이상학적 그림이란 어떤 식이 될 수 있겠는가?

의미에 의한 엄밀한 참[3.3]. 실체적인 양상적 사실 따위와 독립적으로 한 문장의 참을 보증해 주는 보다 강한 조건은 무엇일까? 가령 "개밥바라기는 개밥바라기이다"가 의미에 의해 참인 것은 두 이름의 지시 결정자 간에 동일성이 성립하기 때문이다. 이는 "모든 총각은 총각이다" 따위에서도 나타나는 관계이다.

그런데 이뿐 아니라, 캐시어스 클레이 사례와 같은 곳에서는 동일성이 아닌 개념적 포함(conceptual containment)으로 두 낱말이 관계맺는다. 그리고 이는 로크나 칸트 등에게서 나타났던 생각과도 일치한다. 이제 일종의 소박한 접근은 다음과 같은 신칸트주의적 정의를 주는 것이 되겠다: 어떠한 문장이 분석적인 것은 그 술어의 지시 결정자가 그 주어의 지시 결정자에 포함되는 바로 그 때이다.

신칸트주의적 접근의 문제. 프레게가 제기한 문제 중 하나는 칸트적 정의가 오직 주술 형식의 판단에만 적용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칸트의 예시인 (3.10), (3.11)이 (3.12), (3.13)으로 번역되는 데에서 알 수 있듯, 칸트의 해명은 1차 논리로 번역되었을 때 Fa 꼴이 되는 문장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예문
(3.10) 금은 노란 금속이다.
(3.11) 모든 신체는 연장을 갖는다.
(3.12) \(\forall x(Gx\rightarrow (Yx\land Mx))\)
(3.13) \(\forall x(Bx \rightarrow Ex)\)

그러나 이렇게 확장된 의미에 비추어서도 명백한 주술 형식이 아닌 문장들도 있다:

예문
(3.14) 모든 총각은 결혼하지 않았으며 눈은 희다.
(3.15) 만일 모든 총각이 결혼하지 않았으면 모든 총각은 결혼하지 않았다.
(3.16) 어떠한 총각이라도 결혼해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3.17) 눈이 희다는 것은 가능하다.

이 예문들은 주술 형식을 갖고 있지 않은 듯 보이며, 심지어 (3.16)은 "모든 총각은 결혼하지 않았다"가 분석적일 경우 분석적이게 된다는 점에서 칸트적 정의가 잘못된 결과를 내는 사례가 된다.

다른 문제점은 카츠Jerrold Katz로부터 지적되었다. 아래의 예문들은, 주어와 술어를 갖지만 술어의 지시 결정자가 주어의 지시 결정자에 포함된다고는 전혀 볼 수 없는 사례들이다:

예문
(3.18) 진희는 그와 함께 걷는 이와 걸었다.
(3.19) 진희는 그와 함께 거니는 이와 걸었다.
(3.20) 가난한 사람들은 부유한 사람들보다 가진 돈이 적다.
(3.21) 부유한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보다 가진 돈이 많다.

(3.19)는 분석적이며 주어를 갖지만, "진희"의 지시 결정자는 걷기나 여타 사람들에 대한 지시 결정과는 무관하다. (3.20)이 "가난한 사람들"의 지시 결정자에 "부유한 사람들보다 돈이 적다"의 지시 결정자가 포함되는 사례라고 볼 때에도 문제가 생기는데, 이 경우 (3.21)의 분석성을 순환성에 기대지 않고서는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칸트의 정의에는 두 문제가 있다. 한편으로, 주술구조를 갖지 않는 분석 문장이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주술구조를 갖더라도 칸트의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 분석 문장이 있다.

문장의 부분. 프레게의 문제에 접근하는 한 방식은 문장의 주어와 술어라는 개념을 재고하는 것이다. 칸트의 주술문장 이해가 명료하지는 못하나, 나름의 직관적 내용을 담고 있다. 단순 진술문들은 다음의 (강조된) 주어적 표현과 술어적 표현으로 구성된다고 볼 수 있다:

예문
(3.22) 모든 총각은 남성이다.
(3.23) 어떤 금은 노랗다.
(3.24) 모든 금은 노랗지 않다.
(3.25) 어떤 금은 노랗지 않다.
(3.26) 철수는 총각이다.
(3.27) 철수는 총각이 아니다.
(3.28) 이 반에서 가장 키가 큰 아이는 잘생겼다.
(3.29) 이 반에서 가장 키가 큰 아이는 잘생기지 않았다.

이러한 구분은 현대 언어학의 명사절(NP) 및 동사절(VP)을 통한 구문론적 문장 분석과의 유사성을 갖고 있다. 그러니 주어적 표현과 술어적 표현을 이들과 동일시함 직하겠다. 한 가지 문제는 이러한 접근은 문장 연결사와 양상 연산자를 포함하는 (3.14), (3.17) 따위의 문장에 잘 적용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에 또다른 방식인, 의미론적 방식을 고려할 수 있다. 아이디어는 이렇다. 주어는 그 문장이 주장을 형성하려는 대상을 집어 내며, 술어적 표현은 문장이 참이기 위해 그 대상이 맞추어야 할 조건을 명시한다는 것이다. 이는 두 측면에서 구문론적 접근에 대한 이점을 갖는다. 첫째로, 이는 복합 문장에 보다 잘 일반화된다. 둘째로, 이는 양상적 해명에의 형이상학적 그림과 보다 잘 이어진다.

이에 따라, 먼저는 다음과 같이 LSE(논리적 주어 표현), LPE(논리적 술어 표현)로의 분석을 취해볼 수 있을 것이다.

예문 분석
(3.30) 총각들은 남성이다.
[남성이다]LPE [총각들]LSE
(3.31) 가난한 사람들은 부유한 사람들보다 가진 돈이 적다.
[보다 가진 돈이 적다]LPE [〈가난한 사람들, 부유한 사람들〉]LSE
(3.32) 개밥바라기는 개밥바라기이다.
[이다]LPE [〈개밥바라기, 개밥바라기〉]LSE
(3.33) 무하마드 알리는 캐시어스 클레이이다.
[이다]LPE [〈무하마드 알리, 캐시어스 클레이〉]LSE
(3.34) 만일 눈이 희다면 눈이 희다.
[만일 ... 이면 ...]LPE [〈눈이 희다, 눈이 희다〉]LSE
(3.35) 만일 눈은 희고 풀은 푸르다면 눈이 희다.
[만일 ... 이면 ...]LPE [〈눈은 희고 풀은 푸르다, 눈이 희다〉]LSE
(3.36) 눈이 희다는 것은 필연적이다.
[필연적이다]LPE [눈이 희다는 것]LSE

그런데 여기에서는 또 다른 문제가 일어난다. 이들은 분석성의 후보군이지만, 여기에서 문장의 부분 간의 포함 관계는 LPE와 LSE의 지시 결정자 사이에서가 아니라, LSE의 부분 사이에 있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은 양화 문장의 경우에도, 까다로움이 있는 듯 보인다.

예문
(3.37) 모든 총각은 남성이다.

이항 양화사에 대한 확장된 모스토프스키 일반화 해석extended Mostowskian generalised interpretation 하에서 "모든"의 진리 조건은 다음과 같이 주어지는데, \[X\textsf{와 }Y\textsf{가 집합이라고 할 때, }\ulcorner \text{All}(X, Y)\urcorner\textsf{가 참이다 iff } X \subseteq Y\] "모든"은 집합의 순서쌍에 대해 앞의 집합이 뒤의 집합의 부분집합이라는 지시 결정자를 갖는다고 하자면 "모든"이 LPE이며 〈총각, 남성〉이 LSE라는 분석은 자연스러워진다.

이는, 포함 관계가 반드시 LSE의 서로 다른 부분들 사이의 것이어야만 하며, 주어와 술어 사이의 것은 어찌됐건 아니라고 상정함을 통해 분석성에 대한 칸트적 정의를 수정하려는 새로운 방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막다른 길dead-end이다: LSE의 지시 결정자들의 서로 다른 부분 사이의 포함 관계란 분석성을 위해 충분하지 않다. 심지어 이는 참을 위해서도 충분하지 못하다. (3.38)은 (3.37)과 같은 포함 관계를 갖고 있지만 거짓이다:

예문
(3.38) 어떠한 총각도 남성이 아니다
어떠한...않다(\(\langle\text{총각, 남성}\rangle\))

그러나 이는 문장의 부분에 대한 삼분할적 재구성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세번째 요소는 조건이 대상에 의해 만족되는지의 여부와 그 형태에 관해 알려주는, 수식어modifier이다. 이하는 이에 따른 재분석이다:

예문
(3.39) 총각들은 남성이다.
[들이다]M [총각]LSE [남성]LPE
(3.40) 가난한 사람들은 부유한 사람들보다 가진 돈이 적다.
[가진 돈이 적다]M [가난한 사람들]LSE [부유한 사람들]LPE
(3.41) 개밥바라기는 개밥바라기이다.
[=]M [개밥바라기]LSE [개밥바라기]LPE
(3.42) 무하마드 알리 캐시어스 클레이이다.
[=]M [무하마드 알리]LSE [캐시어스 클레이]LPE
(3.43) 만일 눈이 희다면 눈이 희다.
[만일]M [눈이 희다]LSE [눈이 희다]LPE
(3.44) 만일 눈은 희고 풀은 푸르다면 눈이 희다.
[만일]M [눈은 희고 풀은 푸르다]LSE [눈이 희다]LPE
(3.45) 눈이 희다는 것은 필연적이다.
[필연적이다]LPE [눈이 희다]LSE

한편 "어떠한 총각도 기혼자가 아니다"와 같은 문장은 다음과 같은 관계를 요하며,\[X\textsf{와 }Y\textsf{가 집합이라고 할 때, }\ulcorner \text{No}(X, Y)\urcorner\textsf{가 참이다 iff } X \cap Y = \emptyset\] 이 경우 또다른 지시 결정자 간 관계인 배제와 같은 것이 요구된다.

부분 간 관계로서 포함과 배제. 지시 결정자에 있어 포함 관계란 다음의 원리를 만족해야 한다:

포함 원리
만일 표현 \(E\)가 표현 \(F\)의 지시 결정자를 포함한다면, 모든 \(x\)에 있어, \(c_i\)가 도입 맥락, \(c_u\)가 발화 맥락이라고 할 때, 만일 \(x\)가 순서쌍 \(\langle c_i, c_u \rangle\)에 비추어 \(E\)를 만족한다면, \(x\)가 순서쌍 \(\langle c_i, c_u \rangle\)에 비추어 \(F\)를 만족한다.

이러한 원래는 '전직 공산주의자'가 '공산주의자'를 포함하지 않고, '결혼 상태가 아닌'이 '결혼 상태인'을 포함하지 않게 할 것이다.

배제 관계의 경우, 다음의 원리를 만족해야 한다:

배제 원리
만일 표현 \(E\)가 표현 \(F\)의 지시 결정자를 배제한다면, 모든 \(x\)에 있어, \(c_i\)가 도입 맥락, \(c_u\)가 발화 맥락이라고 할 때, 만일 \(x\)가 순서쌍 \(\langle c_i, c_u \rangle\)에 비추어 \(E\)를 만족한다면, \(x\)가 순서쌍 \(\langle c_i, c_u \rangle\)에 비추어 \(F\)를 만족하지 않아야 한다.

이는 〈\(\neg\)눈이 희다〉의 지시 결정자가 〈눈이 희다〉의 지시 결정자를 배제하고, 〈총각〉의 지시 결정자가 〈기혼〉의 지시 결정자를 배제한다는 자연스러운 직관과 일치한다.

지시 결정자에 관한 추가적 사항.

분석성의 정의[3.4].

사례들[3.5]. (생략)

시사점

Show Comments